2020. 12.16. 수
2019년 2월에 입국해서 3월에 1학년을 시작한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4년중 2년을 마치고 딱 반기점에 서있다.
처음 입국 했을 때 반겨주던 새~~파랗던 하늘과, 가보지는 않았지만 마치 유럽에 와있는 것 같은 느낌을 팍팍 주던 플린더스 역.
오리엔테이션에 갔는데 강한 호주 억양과 발음에 당황하고
한국대학과는 아주 다른 시스템들에 놀라고 신기해하면서 때론 어리버리도 타기도 했다.
또 마구마구 쏟아지는 의학용어들이 감당이 안되서 헤매곤 했었다.
고등학생때 처럼 단어장에 써서 외울 정도의 양이 아니었기에
한 자 한 자 스펠링이 아닌 발음과 단어 뭉텅이 생김새로 기억하려고
온 방안을 포스트잇으로 가득 채워서 지나갈 때마다 계속 눈에 익혔다.
그래서 지금은 내가 평생 살면서 배워온 영어 단어보다
호주와서 2년동안 익힌 단어들이 더 많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가래, 폐렴, 두드러기 이런 일상 질병관련 단어들도 영어로 알지 못했기에
계속 강의 자료를 읽고 읽고 그 문장의 의미와 그 속의 단어를 통으로 기억하려고 했다.
이제는 읽는 속도도 많이 늘었을 뿐만 아니라 단어도 정말 많이 알게되서 그저 신기할 뿐이다.
그리고 뿌듯하다.
이제는 저렇게 포스트잇으로 유난 떨지 않아도 단어도 잘외우지용
어쩌면 누군가는 유학이 뭐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한국에서 계속 살아오고 누구보다 뼛속까지 한국인인 나로서는
그리고 외국 경험이라고는 1년 남짓 미국에 잠시 살다온 경험 말고는 전무했기에
혼자 유학과 이민을 가기로 결정하기까지가 결코 쉽지 않았다.
엄청난 유학비용도 유학비용이지만
20대가 끝나고 30살에 접어들 무렵의 나이에
안정적인 직장에서 인정받고 사랑받으면서 서울에서 나름 재미나게 살고 있었는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민 겸 수의사로 커리어 체인지를 위해 혼자 덜컥
호주 멜버른에 내렸다.
아마 100번도 아니 200번도 더 생각했을 것이다.
"잘 한 결정일까"
합격 통보가 뜨고 입학 예치금을 넣어야 입학 확정이 되기에
적금 예금 다 깨서 외환창구 번호표를 뽑았다가
버리고 다시 돌아갔다가
다시 그 다음날 또 번호표를 뽑았다가
또 다시 그냥 돌아가기를 몇 번을 했는지.
청원 경찰아저씨가 안 잡아간게 다행이지...
시작이 어렵다라는 말처럼
지금 생각해보니까
또 지금 이렇게 이까지 해보니
별거 아니고 다 해내게 되더라!
엄청 잘 한 결정임이 틀림없다.
무엇보다
똑같이 힘들어도 이유가 있는 힘듦이기에
그냥 열정과 청춘을 태워서
하루하루 회사를 위해 또는 한 달 월급만을 위해 버티기 보다는
목표와 이유가 있는 힘듦이라
역설적으로 하나도 힘들지 않다.
그리고 한국에서 5년차 대리로 일하며 별의 별사람을 다 만나고, 별의 별일을 다 겪으며 얻은 경험으로
수의사로 살면 마냥 꿈같고 행복한 꽃길만 펼쳐질거라는 막연한 환상도 없다 ^ㅡ^
이번 2020년은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유독 길고 힘들었던 2학년이었다.
멜번대 수의대는 2학년이 죽음의 학년이다.
갑자기 멜버른 락다운이 시작되면서
야간 통금과 진짜 하루종일 의자에 앉아만 있다가 락다운이 길어지면서 몇 달 방 안에만 갇혀보는 경험도 해보고..
과제로 제출했던 리포트에 문제가 생겨서 속상하고 걱정되는 마음에 잠도 제대로 못자기도 했었고
시험 점수 걱정에 2일 연속으로 밤새다가 돌아가실 뻔 하기도 했다.
너무 많은 시험과 실습에 허덕거리면서 언제 끝날까... 만을 기다렸는데
평생 이 지금 2020년 12월 연말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2021년 새 다이어리를 아이패드에 넣으려고 찾는 걸 보니
다 끝나긴 다 끝났나보다.
무사히 전 과목 패스^ㅡ^
1학년 2019년 4월 다이어리를 보는데
맞아 이 과목 진짜 힘들었지
이걸 다 그래도 거쳐왔구나
내가 이런걸 적었었네 벌써 2년이 지났네
하는 마음에 또 신기하고..
3학년은 이제 더 임상, 이론보다는 더 실습위주로 할 예정이라
두근두근거리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아무일 없이 잘 해낼 수 있겠지
걱정도 된다.
50% 수의사!
어서 끝나서 돈 벌자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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